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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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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나카 고이치는 일본의 화학자이자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원이다. 1959년 도야마현에서 태어났으며, 도호쿠 대학에서 전자파와 안테나 공학을 전공했다. 1983년 시마즈 제작소에 입사하여 질량 분석기 개발에 종사했으며, 단백질 등의 질량 분석을 위한 '소프트 레이저 탈착법'을 개발하여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알츠하이머병 등 질병의 조기 진단을 위한 기술 개발에 힘썼으며, 노벨상 수상 이후 일본 과학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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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고이치
기본 정보
2003년 고이치 다나카
이름다나카 고이치
한자 표기田中 耕一
로마자 표기Tanaka Kōichi
출생일1959년 8월 3일
출생지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시
국적일본
거주지일본
학력
모교도호쿠 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
직업 및 소속
직업전기 공학자, 화학자
소속시마즈 제작소
소속 기관시마즈 리서치 래버러토리 유럽
크라토스 그룹
연구 및 업적
주요 업적생체 고분자 동정 및 구조 분석
소프트 레이저 탈착 이온화법
혈액 한 방울로 질병 조기 진단
지도 교수사와가키 교조
아다치 사부로
영향구보데라 도시야
마쓰오 기요시
로버트 J. 코터
영향을 준 사람프란츠 힐렌캄프
미카엘 카라스
알려진 것소프트 레이저 탈착
수상
수상 내역일본 질량 분석 학회 장려상
노벨 화학상 (2002년)
문화공로자 (2002년)
문화훈장 (2002년)
일본 질량 분석 학회 특별상
기타
저서author1=Tanaka, K.

2. 유년 시절과 교육

다나카 고이치는 1959년 도야마현 도야마시에서 태어나 도호쿠 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입학 당시 호적 초본을 통해 자신이 양자임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1년간 유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학업에 전념하여 졸업 시에는 학과 상위 10%의 성적을 기록했다.[3] 대학 졸업 후 소니 입사 시험에는 불합격했지만, 시마즈 제작소에 입사하여 질량 분석기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2. 1. 유년기

1959년 도야마현 도야마시에서 태어났다. 출생 1개월 만에 친어머니가 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숙부의 집에서 자랐으며, 그 후 숙부의 집에 양자로 들어갔다.[3] 형제로는 형 두 명과 누나가 있다. 도야마 시립 하치닌마치 초등학교(현 도야마 시립 시바조노 초등학교)에서 4~6학년 담임이었던 사와가키 교조로부터 장래의 기초를 다지는 과학교육을 받았다. 그 후 도야마 시립 시바조노 중학교와 도야마 현립 도야마추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호쿠 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입학 시에 받아본 호적 초본에서 자신이 양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 충격으로 교양 과정 재학 시에 성적 미달로 약 1년간 유급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전문 과정 공부에만 전념하여 졸업할 무렵에는 학과에서 상위 10%의 성적을 기록했다. 당시 지도 교관은 아다치 사부로(현 도호쿠 대학 명예교수)이며, 전자기파안테나 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1학년 때부터 도호쿠 대학 생활협동조합 학생조직위원회에 소속되어 조합원 조직 활동, 정보 선전, 문화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했으며, 당시 다나카가 활동했던 기록도 남아 있다.

2. 2. 학창 시절

1959년 도야마현 도야마시에서 태어났다. 출생 1개월 만에 친어머니가 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숙부의 집에서 자랐으며 그 후 숙부의 집에 양자로 들어갔다.[3] 형제는 형 두 명과 누나가 있다. 도야마 시립 하치닌마치 초등학교(현 도야마 시립 시바조노 초등학교)에서 4~6학년 담임이었던 사와가키 교조로부터 장래의 기초를 다지는 과학교육을 받았다. 그 후 도야마 시립 시바조노 중학교와 도야마 현립 도야마추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호쿠 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입학 시에 받아본 호적초본에서 자신이 양자인 것을 알았고 그 충격으로 교양 과정 재학 시에 성적 미달로 약 1년간 유급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이를 앞당겨서 전문 과정 공부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졸업할 무렵에는 학과에서 상위 10%의 성적을 남겼다. 당시 지도 교관은 아다치 사부로(현 도호쿠 대학 명예교수)이며, 전자파안테나 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1학년 때부터 도호쿠 대학 생활협동조합 학생조직위원회에 소속되어 조합원의 조직 활동이나 정보 선전, 문화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실시했는데, 그 당시 다나카가 활동했던 기록도 남아 있다.

3. 시마즈 제작소 경력

1983년 시마즈 제작소에 입사하여 기술연구본부 중앙연구소에 배속돼 화학 분야 기술 연구에 종사했다. 1985년에는 단백질 등의 질량 분석을 하는 ‘소프트 레이저 탈착법’을 개발했다. 1992년 영국 클레이토스 그룹에 파견되었으며, 1997년에는 영국 시마즈 리서치 래보러토리 유럽에 파견되었다. 1995년 중매로 결혼했다.[9]

2002년 시마즈 제작소 생명과학연구소 주임으로 발탁되었으며, 같은 해 ‘생체고분자의 구조적 분석과 동정을 위한 방법론의 개발’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문화훈장 수훈 및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고, 도야마현 명예현민, 교토시 명예시민, 도호쿠 대학 명예박사 등의 칭호를 받았다. 노벨상 수상 당시 시마즈 제작소에 근무하는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현직 회사원 최초의 노벨상 수상으로 일본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 후 시마즈 제작소 특별연구원, 다나카 고이치 기념 질량 분석 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했다.

3. 1. 소프트 레이저 탈착법 개발

단백질과 같은 거대분자의 질량 분석을 위해서는 분석 대상 물질을 레이저로 조사하여 이온화하고 기화시켜야 한다. 문제는 강한 레이저 펄스를 거대분자에 직접 조사하면 분석 대상 물질이 작은 조각으로 분해되어 구조가 손실된다는 것이다. 다나카 고이치는 1985년 2월, 초미세 금속 분말과 글리세롤(glycerol) 혼합물을 매트릭스로 사용하면 분석 대상 물질의 구조를 손실시키지 않고 이온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4] 그의 연구는 1985년에 특허 출원되었고, 특허 출원 공개 후 1987년 5월 교토에서 열린 일본 질량 분석 학회 연례 회의에서 발표되어 소프트 레이저 탈착(soft laser desorption, SLD)으로 알려지게 되었다.[4]

단백질을 질량 분석기에 넣을 경우, 단백질을 기화시키고 이온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백질은 기화하기 어려운 물질이기 때문에, 이온화에는 고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고에너지를 가하면 단백질은 기화되지 않고 분해되기 때문에, 특히 고분자량 단백질을 이온화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글리세롤(글리세린)과 코발트 혼합물(매트릭스)을 열에너지 완충재로 사용한 결과, 레이저에 의해 단백질을 기화시켜 검출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하였다. 글리세롤과 코발트를 “잘못” 섞어서 “어차피 버릴 거니까” 하고 실험한 결과, 놀랍게도 성공하였다. 이 "레이저 이온화 질량 분석계용 시료 작성 방법"은 1985년에 특허 출원되었다.

현재 생명과학 분야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MALDI-TOF MS"는 다나카 등의 발표와 거의 동시기에 독일의 화학자 프란츠 힐렌캄프와 미카엘 카라스에 의해 발표된 방법이다. MALDI-TOF MS는 저분자 화합물을 매트릭스로 사용하는 점이 다나카 등의 방법과 다르며, 더 높은 감도로 단백질을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다나카 고이치가 개발한 방법을 "소프트 레이저 탈리 이온화법"으로 하여, 노벨 화학상을 2002년에 수상했다. 기여도는 4분의 1이었다.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 존 B. 펜 (수상 비율: 1/4) "생체 거대 분자의 질량 분석을 위한 소프트 탈착 이온화 방법 개발"
  • 다나카 고이치 (수상 비율: 1/4) "생체 거대 분자의 질량 분석을 위한 소프트 탈착 이온화 방법 개발"
  • 쿠르트 뷔트리히 (수상 비율: 1/2) "용액 내 생체 거대 분자의 3차원 구조를 결정하기 위한 핵자기 공명 분광법 개발"


노벨상 수상 결정에 있어서 힐렌캄프와 카라스가 아닌 다나카가 선정된 것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나왔고, 다나카 자신도 자신이 수상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영어 논문 발표는 힐렌캄프와 카라스가 빨랐지만, 두 사람은 그 이전에 다나카가 일본에서 한 학회 발표를 참고했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12] 다나카의 공헌이 먼저라고 인정받았다.

3. 2. 노벨 화학상 수상

1985년, 단백질 등의 질량 분석을 하는 ‘소프트 레이저 탈착법’을 개발하여 훗날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된다.[28] 2002년에는 ‘생체고분자의 구조적 분석과 동정을 위한 방법론의 개발’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30] 존 B. 펜쿠르트 뷔트리히도 공동 수상자였다.

단백질과 같은 거대분자의 질량 분석을 위해서는 분석 대상 물질을 레이저 조사를 통해 이온화하고 기화시켜야 하는데, 강한 레이저 펄스를 거대분자에 직접 조사하면 분석 대상 물질이 작은 조각으로 분해되어 구조가 손실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다나카는 1985년 2월, 초미세 금속 분말과 글리세롤(glycerol)의 혼합물을 매트릭스로 사용하면 분석 대상 물질의 구조를 손실시키지 않고 이온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4] 그의 연구는 1985년에 특허 출원되었고, 1987년 5월 교토에서 열린 일본 질량 분석 학회 연례 회의에서 발표되어 소프트 레이저 탈착(soft laser desorption, SLD)으로 알려지게 되었다.[4]

하지만, 다나카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독일의 과학자 프란츠 힐렌캄프(Franz Hillenkamp)와 마이클 카라스(Michael Karas)의 공헌을 무시할 수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5][6] 이들은 1985년에 소규모 유기 화합물을 매트릭스로 사용하여 감도가 더 높은 방법을 처음으로 보고했고, 이를 매트릭스 보조 레이저 탈착/이온화(matrix-assisted laser desorption/ionization, MALDI)라고 명명했기 때문이다.[7]

다나카의 SLD는 현재 생체 분자 분석에는 사용되지 않지만, MALDI는 질량 분석 연구실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MALDI는 SLD보다 먼저 개발되었지만, 다나카의 보고 이후에야 단백질 이온화에 사용되었다.[8]

3. 3. 노벨상 수상 이후의 활약

노벨상 수상 후 다나카 고이치는 수많은 강연과 인터뷰에 응했고, 저서도 출판했다. 일본 학사원 회원, 교토 대학 등의 객원 교수로도 취임했다. 연구 개발 과정과 엔지니어로서의 지론을 설파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34] 2009년부터는 FIRST 프로그램 '차세대 질량 분석 시스템 개발과 창약·진단으로의 공헌'에 채택되어 중심 연구자로서 활약했고, 2013년 강연에서는 "혈액 한 방울로 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실현 가능한 꿈이다"라고 말했다.[34] 2011년에는 시마즈 제작소의 다나카 최첨단 연구소 소장을 겸임했으며, 2013년에는 시마즈 제작소 시니어 펠로가 되었다.

4. 혈액 한 방울로 질병을 조기 발견하는 기술

다나카 고이치는 혈액 한 방울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알츠하이머병, 전립선암 등 여러 질병의 조기 진단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기술은 항체항원의 결합 원리를 이용하여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을 검출하는 방식으로, 기존 기술보다 훨씬 높은 감도를 보인다.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 당시, 다나카 고이치의 기술은 의료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감도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FIRST 프로그램(최첨단 연구 개발 지원 프로그램)에 채택되어 5년간 약 40억의 연구비를 지원받으면서 실용화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약 60명의 연구진이 투입되어 1년 만에 획기적인 분석 방법을 개발, 감도를 최대 1만 배까지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1년, 다나카 고이치는 이 기술이 "질병의 조기 진단과 항체를 이용한 신약 개발에 연결되는 기술"이라고 설명하며, 연구 성과를 일본 학사원 발행 영문 저널 전자판에 발표했다. 2012년에는 도쿄 대학 의과학연구소 교수 등과 함께 미국 과학 저널 PLOS ONE에 발표했다.

2014년에는 혈액에서 알츠하이머병 원인 물질을 검출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으며, 같은 해 4월부터 새로운 체제로 실용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4. 1. 기술 개요

체내에서는 침입한 항원(단백질)과 결합하여 항체(면역물질)가 생성된다. 항체는 Y자 형태이며, 두 개의 팔 중 하나로 항원과 결합한다. 이 구조를 인공적으로 변형하여, 뿌리 부분에 폴리에틸렌글리콜이라는 탄력성을 가진 고분자화합물을 삽입했다. 항체의 팔은 이것을 스프링처럼 하여 움직여, 두 개의 팔이 동시에 항원과 결합하도록 했다.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단백질 조각에 대해 실험한 결과, 일반적인 항체보다 100배 이상 강력하게 항원을 포획할 수 있었다.[32]

이후, 당쇄의 상태를 간단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어, 펩타이드를 선별하지 않고 아주 미량의 혼합물 상태에서도 당쇄의 상태를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33] 1mL의 혈액에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미지의 관련 물질 8종류를 발견하는 것으로도 이어졌다.[34] 이 기술은 알츠하이머병이나 전립선암 등 다양한 질병의 조기 발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33]

4. 2. 연구 개발 과정

다나카 고이치는 노벨 화학상 수상 후 많은 강연과 인터뷰에 응하고, 저서도 출판했다. 일본 학사원 회원이자 교토 대학 등의 객원 교수로도 취임했다. 연구 개발 과정과 엔지니어로서의 소신을 밝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2009년부터 FIRST 프로그램(최첨단 연구 개발 지원 프로그램[11]) '차세대 질량 분석 시스템 개발과 창약·진단에의 공헌'에 채택되어 중심 연구자로서 활약했다. 2013년 강연에서는 "혈액 한 방울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실현 가능한 꿈이다"라고 말했다.[34] 2011년에는 시마즈 제작소의 다나카 최첨단 연구소 소장도 겸임했고, 2013년에는 시마즈 제작소 시니어 펠로가 됐다.

체내에서는 침입한 항원(단백질)과 결합하여 항체(면역 물질)가 만들어진다. 항체는 Y자형으로 돼 있으며 두 개의 팔 중에서 한 개로 항원과 결합한다. 이 구조를 인공적으로 개변해서 근본 부분에 폴리에틸렌 글리콜이라는 탄력성을 가진 고분자 화합물을 삽입했다. 항체의 팔은 이것을 스프링처럼 움직여서 두 개의 팔이 동시에 항원과 결합할 수 있도록 했다. 알츠하이머병과 관련있는 단백질의 단편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 통상의 항체보다 100배 이상 강력하게 항원을 잡아낼 수 있었다.[32]

그 후 글리칸 상태를 간단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됐고 펩타이드를 선별하지 않고 극히 미량의 혼합물 상태로부터 글리칸 상태를 조사할 수 있게 됐다.[33] 1 ml의 혈액으로부터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검출하는 것에 성공, 미지의 관련 물질을 8종류나 찾아낼 수 있게 됐다.[34] 이 기술은 알츠하이머병이나 전립선암 등 여러 질병을 조기 발견하는데 공헌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33]

2002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지만 당초의 기술은 의료에 도움이 되려면 감도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9년부터 FIRST 프로그램인 ‘차세대 질량 분석 시스템 개발과 창약·진단으로의 공헌’[35]에 채택돼 5년 간 약 40억의 연구비를 얻으면서 실용화를 위해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 60명의 체제로 연구 개발에 나섰고 1년 정도로 획기적인 분석 방법을 개발, 감도를 최고 1만 배까지 높이는 데 성공했다.

2011년 11월에 있은 취재에서 “병의 조기 진단과 항체를 이용한 신약 개발에 이어지는 기술”이라고 말했고 그러한 성과를 2011년 11월 11일 일본 학사원에서 발행하는 영문 저널 전자판에서 발표됐다.[32] 이듬해 2012년 8월 23일에는 다나카가 객원 교수로 맡고 있는 도쿄 대학 의과학연구소 교수 세이키 모토하루 등과 미국의 과학 잡지 《플러스 원》에 발표됐다.[33]

2014년에는 혈액으로부터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을 검출 가능한 단계에 이르러서[34] 그해 4월부터는 새로운 태세로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5. 사회적 영향

다나카 고이치는 노벨상 수상 당시 7:3 가르마 헤어스타일과 작업복 차림,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중매결혼 경력, 온화하고 소박한 태도로 많은 일본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NHK로부터 제53회 NHK 홍백가합전 심사위원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저는 연예인도 아니고 박사도 아닙니다."라며 사양했다.

평범한 회사원이 노벨상이라는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수상한 것뿐만 아니라, 장인 정신과 겸손한 인품 또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온화한 성격으로 "착한 사람의 대명사"라고까지 매스컴에서 칭찬했지만, 다나카는 매일 밤낮없이 몰려드는 기자들과 과장된 성인 이미지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고휘도 청색 발광 다이오드를 발명한 나카무라 슈지니치아 화학공업의 소송에 대해, 다나카 고이치가 거론되면서 나카무라 슈지가 탐욕스럽다는 비난이 제기되었지만, 다나카는 "자신의 발명은 회사 매출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며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나카무라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20] 참고로, 시마즈 제작소로부터 받은 특허 보상은 10000JPY 정도였지만,[20] 기술 공헌에 대한 사내 표창은 받았으며 수십만 엔 상당의 보상을 받았다.

많은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연구 및 기술자로서의 자세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소신을 이야기했다. 내각부의 종합과학기술회의에도 참가하여 일본의 과학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다.

5. 1. 노벨상 수상 소동과 여파

회사에서 전화로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Nobel’, ‘Congratulation’이라는 단어를 들으면서도 비슷한 해외의 상이라고 생각했고, 동료들이 한바탕 놀라게 하려는 속셈(몰래카메라)으로 여기기도 했다.[36] 그 후 회사 격리실로 이동해 오후 9시부터 몰려든 취재진과 기자회견을 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양복 차림을 준비하지 못했고 수염을 깎을 시간도 없었다.[36] 평소에는 백발로 염색하고 있었는데, 수상 발표 1주일 전쯤 이발소에서 다시 염색을 했다.[36]

다나카는 철도 애호가여서 전철(게이후쿠 전기 철도 아라시야마 본선)의 운전석을 보면서 통근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는데,[36] 그날 밤에는 집에 돌아갈 수 없어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36] 수상을 실감한 것은 다음 날 신문에 실린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나서였다고 한다.[36] 노벨상 수상 후 상경했을 때는 시마즈 제작소의 출장비 관계상 탈 수 없었던 500계 신칸센의 그린샤를 탈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말하기도 했다.[36] 많은 강연과 인터뷰 요청을 받고 연구와 기술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지론을 이야기했다.[36] 내각부의 종합과학기술회의에도 참석해 일본의 과학 정책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노벨상 시상식 후에는 언론에 단독으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2010년 10월 6일 스즈키 아키라, 네기시 에이이치의 노벨 화학상 수상이 결정되었을 때 자신의 근무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상자 발표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상한 지 8년이 지나 연달아 수상자가 나오면서 나 자신이 어깨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37][38] 다나카 고이치의 7대 3 머리 스타일에 작업복 차림, 평범한 샐러리맨으로서 중매 결혼을 했다는 경력, 온화하고 어눌한 말투(노벨상 수상 관련 기자회견에서도 편하다는 이유로 시마즈 제작소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 차림으로 회견에 응했다)는 많은 일본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NHK로부터 그 해의 홍백가합전 심사위원 출연을 의뢰받았지만, “나는 연예인 따위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고사했다.[39]

일개 샐러리맨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이고, 기술자 기질로서 다나카의 겸허한 인간성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온후한 인품 때문에 언론에서 ‘선인의 대명사’라는 표현을 쓰며 추켜세웠지만, 정작 다나카는 자신의 저서에서 연일 기자의 추적과 독보적인 성인과 같은 이미지 때문에 고민했다고 밝혔다.[36]

고휘도 청색 발광 다이오드를 발명한 나카무라 슈지니치아 화학공업의 소송에 대해 다나카가 증인으로 세워져 나카무라가 탐욕스럽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다나카는 “자신의 발명은 회사의 매출 향상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다”며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나카무라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40] 나카무라는 고휘도 청색 발광 다이오드와 청자색 반도체 레이저 제조 방법을 발명·개발한 공로로 201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시마즈 제작소로부터의 특허 보수 자체는 1만 엔 정도였지만,[40] 실제로는 기술 공헌에 대한 사내 포상이 있어서 수십만 엔 상당의 보수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36]

5. 2. 다나카 고이치와 매스미디어

회사에서 수상 소식을 전화로 들었을 때 다나카는 ‘Nobel’, ‘Congratulation’이라는 단어를 들으면서도 비슷한 해외의 상이라고 생각했고, 동료들이 자신에게 몰래카메라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회사 격리실에서 오후 9시부터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갑작스러운 일이라 양복을 준비하지 못했고 수염도 깎지 못했다. 평소에는 백발로 염색하고 있었는데 수상 발표 1주일 전쯤에 이발소에서 다시 염색을 했다.[36]

철도 애호가였던 다나카는 전철(게이후쿠 전철 아라시야마 선)의 운전석을 보면서 통근하는 것을 즐겼는데, 그날 밤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다음날 신문에 실린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수상을 실감했다고 한다. 500계 신칸센그린차를 탈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며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많은 강연과 인터뷰 요청을 받으며 연구와 기술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지론을 말했다. 내각부의 종합과학기술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과학 정책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10년 10월 6일, 스즈키 아키라, 네기시 에이이치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자신의 근무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수상자 발표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고 밝히며, “수상한 지 8년이 지나 연달아 수상자가 나오면서 나 자신이 어깨의 짐을 내려놓을 수가 있을까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37][38]

다나카 고이치의 7대 3 가르마 머리 스타일, 작업복 차림,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중매 결혼 경력, 온화하고 어눌한 말투(노벨상 수상 관련 기자회견에서도 편하다는 이유로 시마즈 제작소의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 차림으로 회견에 응했다)는 많은 일본인들의 공감을 얻었다. NHK로부터 그 해의 홍백가합전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지만 “나는 연예인 따위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했다.[39]

평범한 회사원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 기술자로서의 겸허한 인간성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언론에서는 ‘선인의 대명사’라고 표현하며 칭찬했지만, 다나카는 자신의 저서에서 연일 기자의 추적과 독보적인 성인과 같은 이미지 때문에 고민했다고 밝혔다.

고휘도 청색 발광 다이오드를 발명한 나카무라 슈지니치아 화학공업의 소송에 대해, 다나카는 “자신의 발명은 회사의 매출 향상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다”라고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나카무라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40] 시마즈 제작소로부터의 특허 보수는 1만 엔 정도였지만,[40] 실제론 기술 공헌에 대한 사내 포상이 있어서 수십만 엔 상당의 보수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6. 수상 경력 및 영예

연도수상 내역
1989년일본 질량분석학회 장려상
2002년노벨 화학상
문화훈장[42]
문화공로자[42]
도호쿠 대학 명예박사
2003년일본 질량분석학회 특별상[41]
도야마현 명예현민[43]
2003년교토시 명예시민[44]
2006년일본 학사원 회원


참조

[1] 논문 Protein and Polymer Analyses up to m/z 100 000 by Laser Ionization Time-of flight Mass Spectrometry
[2] 웹사이트 Biographical Snapshots of Famous Women and Minority Chemists: Snapshot http://www.jce.divch[...] 2008-08-18
[3] 서적 Nobel Faces https://archive.org/[...] John Wiley & Sons
[4] 웹사이트 Advanced information on the Nobel Prize in Chemistry 2002 http://nobelprize.or[...]
[5] 논문 Nobel Prize controversy http://www.the-scien[...] 2014-06-04
[6] 서적 Understanding Bioanalytical Chemistry: Principles and Applications https://books.google[...] John Wiley & Sons 2008-12-08
[7] 논문 Influence of the Wavelength in High-Irradiance Ultraviolet Laser Desorption Mass Spectrometry of Organic Molecules
[8] 논문 Laser desorption ionization of proteins with molecular masses exceeding 10,000 daltons http://www.klinikum.[...] 2006-05-11
[9] 뉴스 読売新聞 2002-10-10
[10] 문서 夫妻の間に子はいない。
[11] 웹사이트 日本学術振興会「最先端研究開発支援プログラム」 https://www.jsps.go.[...]
[12] 보고서 GREAT IDEAS of a DECADE http://pubs.acs.org/[...] 2018-01-15
[13] 뉴스 血液一滴で病気診断…あの田中耕一さんらが成功 2011-11-09
[14] 뉴스 がん早期診断に応用も=「糖鎖」簡単な分析法―ノーベル賞の田中さんら開発 https://web.archive.[...] 時事通信 2014-06-29
[15] 뉴스 ノーベル賞・田中耕一さん 「病気早期発見 私の夢」 http://iryou.chunich[...] 2014-06-29
[16] 논문 タクシーのラジオで聞いたビッグニュース わが家のノーベル賞騒動記 2002-11-22
[17] 문서 [[総合職]]であるため昇進するには営業など様々な部署を経験する必要があった。
[18] 뉴스 http://www.jiji.com/[...] 時事通信 2010-10-06
[19] 뉴스 ノーベル賞受賞の2人を歴代受賞者が祝福 https://news.ntv.co.[...] 日テレNEWS24 2010-10-07
[20] 인터뷰 [[矢嶋英敏]]へのインタビュー 朝日新聞 2002-11-23
[21] 웹사이트 田中耕一(中心研究者/島津製作所 田中最先端研究所 所長) http://www.first-ms3[...] FIRSTプログラム 2014-08-27
[22] 웹사이트 平成14年度 文化功労者及び文化勲章受章者(五十音順)−文部科学省 www.mext.go.jp/b_men[...] 200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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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논문 Protein and Polymer Analyses up to m/z 100 000 by Laser Ionization Time-of flight Mass Spectrometry
[26] 뉴스 고시바 마사토시 노벨 물리학상 수상 등 일본 3년 연속 노벨상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2-10-09
[27] 뉴스 노벨 화학상 일본 다나카 고이치 회사원의 꿈같은 수상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2002-10-10
[28] 뉴스 요미우리 신문 2002-10-10
[29] 웹사이트 과학계 노벨상 일본인 수상자 9인의 위업 - 다나카 고이치(2) http://www.kahaku.go[...] 국립과학박물관
[30] 웹사이트 The Nobel Prize in Chemistry 2002 http://www.nobelpriz[...] Nobelprize.org
[31] 보고서 GREAT IDEAS of a DECADE http://pubs.acs.org/[...] 2018-01-15
[32] 뉴스 血液一滴で病気診断…あの田中耕一さんらが成功 요미우리 신문 2011-11-09
[33] 뉴스 がん早期診断に応用も=「糖鎖」簡単な分析法―ノーベル賞の田中さんら開発 지지 통신 2012-08-23
[34] 뉴스 ノーベル賞・田中耕一さん 「病気早期発見 私の夢」 http://iryou.chunich[...] 호쿠리쿠 주니치 신문 2013-08-31
[35] 웹사이트 最先端研究開発支援プログラム「次世代質量分析システム開発と創薬・診断への貢献」 http://www.first-ms3[...] FIRST 프로그램
[36] 저널 택시의 라디오에서 들은 빅 뉴스 우리 집 노벨상 소동기 http://ci.nii.ac.jp/[...] 2002-11-22
[37] 뉴스 지지 통신 2010-10-06
[38] 뉴스 노벨상 수상자 2명을 역대 수상자가 축복 http://www.news24.jp[...] 닛테레 NEWS24 2010-10-07
[39] 웹사이트 다나카 씨는 사퇴…홍백 심사위원 발표 http://www.sponichi.[...] 스포니치아넥스 2002-12-26
[40] 인터뷰 야지마 히데토시와의 인터뷰 아사히 신문 2002-11-23
[41] 웹사이트 다나카 고이치(중심 연구자 / 시마즈 제작소 다나카 최첨단연구소 소장) - 차세대 질량 분석 시스템 개발과 창약·진단으로의 공헌(FIRST 프로그램) http://www.first-ms3[...]
[42] 웹사이트 2006년도 문화공로자 및 문화훈장 수상자(가나다순) www.mext.go.jp/b_men[...] 문부과학성 2009-10-25
[43] 웹사이트 도야마현의 현창·표창 제도 https://www.pref.toy[...] 2022-08-02
[44] 웹사이트 교토시 명예시민 다나카 고이치 씨 http://www.city.kyot[...]
[45] 저널 매트릭스 지원 레이저 탈리 이온화 질량 분석법 (MALDI-TOFMS)의 개발과 그 역사에 대해 https://doi.org/10.2[...] 201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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